대기업에서 여성이 임원이 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통과해야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성에겐 쉽지 않은 자리다. 1983년 LG전자에 입사해 여성 공채 1호로 임원이 된 지 벌써 10년째. 아하프리, 뉴초콜릿폰, 보더리스 TV 등 수많은 히트 제품을 남기며 디자인경영 전문가로 우뚝 선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김진 전문위원을 만나보았다.

디자인 히어로즈 ⑥
HE디자인연구소 
김진 전문위원(상무)

김진 전문위원 사진

– 홍익대학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과 (학사,석사,박사)
– 1983~現: LG전자 디자인 경영센터 근무
– 2000: 대한민국 디자인전람회 심사위원
– 2005년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 (KAID) 부회장
– 2002년~2006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MC 디자인 연구소장(VP)
– 2007년~2008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Corporate 디자인연구소장(VP)
– 2009년~ 2010 국가 과학기술 정책자문 (대통령실 교육, 과학기술, 문화 비서관)
– 주요 수상경력
▲ 2009년 Reddot Design Award ( Magic Remote control Interface UX/단체)
▲ 2007년 IF Interface Design Award (Prada Phone UI/단체)
             인간공학 디자인상 금상수상 (Prada Phone GUI /단체)
▲ 2005년 대한민국 Good Design 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초콜릿폰 /단체)
▲ 2004년 대한민국 동 탑 산업훈장 수상 (개인)
▲ 2003년 한국 휴대폰 최초의 독일 IF 금상수상( KP6300 Phone/단체)
▲ 2002년 대한민국 Good Design 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KH5000/단체)
             IDEA Concept 부문 금상 수상 (Good Morning, evening/ 단체)
             제1회 모바일 기술대상 디자인부문 대상 수상 (정통부주관/ 단체)
▲ 1998년 대한민국 최우수 디자이너 상 수상 (국무총리상/ 개인)
             대한민국 Good Design 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AHHA Free/단체) 


디자인과 경영을 접목한 디자인 디렉터, 김진
아무리 좋은 재료라 할지라도 요리사만의 비법으로 잘 어우러질 때 맛있는 요리로 탄생하고,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어떻게 코디를 하느냐에 따라 빛이 나듯이 디자인 분야도 ‘쿠킹(Cooking)’을 잘하는 디자인 디렉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디자인은 감성과 논리가 잘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좌뇌와 우뇌가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예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만 봐도 그렇고요. 같은 사물을 봐도 남과 다르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고객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창의력을 더한 다음 이를 잘 버무려(쿠킹해서) 제품 디자인으로 연결하게하는 것이 디렉터의 역할이죠. 이때 디자이너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는냐,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졌느냐가 큰 차이를 만들어난다고 봅니다.   

내 인생의 디자인 3선을 꼽아보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히트 디자인들은 실제로 어느 한 명의 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다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다듬는 사람, 발로 뛰어다니면서 좋은 제품이 되도록 엔지니어들과 협의를 하는 사람 등 수많은 디자이너의 공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참여했던 수많은 디자인 중에서 제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방향을 정한 것 3가지를 꼽아보겠습니다.

1. 워크맨의 아성을 허문 아하프리

아하프리 제품 사진1998년 LG의 아하프리가 소니 워크맨을 몰아내고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돌풍을 일으킨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학생들이 소형 카세트를 귀에 오래 꽂고 다니다 보니 귀가 아프다면서 스피커를 연결해서 듣는 것을 보고 상품기획팀에 스피커를 만들어달라는 요구했어요. 충전기와 스피커를 일체형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죠. 당시 소형 카세트는 검은색의 사각형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세일러복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어 방향성을 제시했고, 이것이 결국
98년 ‘굿디자인전(GD)’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으니 제게는 잊지 못할 제품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고객 인사이트를 찾아낸 것이고 ‘Jobs to be done’ 관점에서 일을 한 것이죠.

2.
LG 브랜드를 명품 반열에 올린 초콜릿폰과 프라다폰

제가 MC 디자인연구소장을 맡은 당시 초콜릿폰과 프라다폰의 디자인 디렉터를 맡아 휴대폰에서는 처음으로 버튼 대신 터치패드를 적용한 것이 미니멀한 디자인을 완성한 기반이 된 것 같아요. 당시 LG전자는 휴대폰에서 후발 주자로서 뭔가 고객들이 ‘와우(WOW)’할 만한 독특한 제품을 디자인해보자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초슬림 슬라이드 폰’을 대표 디자인전략으로 방향을 잡고 고심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슬림을 뛰어넘어 보다 감성적인 가치를 줄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러던 중 고객 조사 결과 중에 “슬라이드폰 전면에 버튼이 폴더폰보다 지저분해 보인다.”라는 요구를 반영해 전면의 버튼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있더라고요. 사용자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을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없나?’하는 고심하던 끝에 휴대폰 LCD 화면을 과감히 덮고(당시에는 휴대폰 화면에 LCD가 드러나 있었음.) 슬라이드를 올리면 버튼의 불이 켜지는 ‘터치 키패드’를 적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담당 디자이너와 그룹장에게 제시했습니다. 결국, 고객의 의견에서 힌트를 얻어 ‘디자인 중심의 신제품 개발’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초콜릿폰과 프라다폰 제품 사진
초콜릿폰은 ‘디자인만으로도 사고 싶은 휴대폰’을 만들자는 버튼 대신 터치패드를 적용하고, 블랙 컬러의 심플한 디자인에 꼭 필요한 기능만 넣어 전 세계적으로 2,000만대 이상 팔려나간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초콜릿폰을 통해 트렌드세터들에게 LG가 디자인 리딩 기업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이후 블랙라벨 2인 샤인으로 중후하면서도 친근한 신뢰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어 프라다와의 코 브랜딩(Co-Branding)을 통해 LG를 명품 반열에까지 올려놓았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프라다폰이 세계 최초의 터치스크린 폰임에도 우리가 애플(Apple)처럼 콘텐츠나 UX 관점에서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죠.

3. 마술 같은 TV, 매직모션 UI

보더리스 TV에 적용한 매직 모션 UI는 ‘매직봉을 TV를 가리키면 마술처럼 클릭이 되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개발팀의 반대가 거셌지만 마침 개발된
자이로 센서(Gyro Sensor)가 장착된 ‘매직 모션 리모컨 (Magic Motion Remote Control)’과 결합하면서 정말 마술처럼 매직 모션 UI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실제 TV 사용 고객을 대상으로 한 아이 트래킹, 비디오 분석 등 고객시뮬레이션 조사를 최초로 실시해 철저히 고객 인사이트 관점에서 진행한 결과였죠.  

매직 모션 TV 제품 사진

보더리스 TV의 매직 모션 UI는 사용성과 콘텐츠가 어우러진 사용자 UX 디자인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 경험에 기반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고 이를 디자인으로 가시화함으로써 고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토탈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보더리스 매직UI의 방향성입니다.

시니어폰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와인폰도 성공한 50대 고객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최신 기술에 대한 요구, 젊음을 반영하는 감성적인 디자인 니즈 등을 듣고 이를 철저히 반영해 탄생한 제품이고요. 그 밖에도 미국 시장에 출시해 타임 지에서 ‘주머니속의 보석’이라는 극찬을 얻어 베스트셀러가 된 카메라폰(모델명: LG-VX6000)과 세계 최초로 Swivel Hinge를 적용한 캠코더 폰(모델명: KH5000), 새로운 표면처리를 적용한 유기 EL휴대폰 100 series 등도 잊지 못할 저의 자식들입니다. 

카메라폰 제품 사진보더리스 TV 제품 사진
2
010년 디자인 트렌드는 어떻게 예측하시나요? 


하하..그건 비밀인데요, 살짝만 말씀드리자면 ECO Friendly, Real Material, User Experience Design이 3가지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6년에는 제품 디자인 소재 활용에서 투명과 메탈이 큰 흐름이었는데요, 이같이 소재 활용 측면의 그린 에코에서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블루 에코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보통 고객들은 구매 단계에서는 외관 디자인을 보고, 사용 단계에서는 인터페이스를 주로 보고, 평가  단계에서는 경험, 신뢰감 등의 매력적인 느낌(Attractive Feeling)을 중시하는 소비 행태를 보입니다.  최근에는 디자인 트렌드가 매우 빨리 변화하고 있는데요, 트렌드만을 따르는 디자인은 평범한 제품에 그칩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자인에 고객 인사이트를 반영해야 고객에게 사랑받는 히트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특히, 최근에는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관점에서 좀 더 깊이 고민하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곧 좋은 기업
디자인 수준은 기업 전체의 수준을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자인을 선택하는 과정이나 제품을 양산되는 과정에서 그 기업의 힘을 보여줍니다. 최종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디자인이지만 이를 서포트하는 개발, 생산, 마케팅 등 전 영역을 포괄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공로’를 먼저 떠올립니다.

리더십이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

김진 전문위원 사진사원 시절에는 일만 잘하면 되지만  임원이 되면 네트워킹과 인간관계가 더 중요해집니다.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돼요. 뭐든 직접 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바이러스를 전파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개념을 정립하고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산업정책연구원과 헬싱키 대학원 부설 MBA에서 경영과정을 밟는 등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 제 욕심이라면 나중에 LG를 떠났을 때 후배들에게 ‘괜찮은 디자이너’로 남고 싶은 것이랍니다. 물론 저를 존경해주는 후배들이 있다면 더욱 영광이겠고요.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은 몇 점?
집에서 저는 남편이 환자들에게 좋은 치과의사가 되기를 바라는(내조는 잘 못하지만), 딸 둘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지적인 자산을 물려주고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자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퇴근하면 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노력했어요. 

가정에서 조건없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엄마가 아니라 나에게도 투자하고 일을 통해 자신의 행복도 찾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해요. 아이들도 딸들이라 그런지 엄마의 그런 모습을 응원해 주고 있고요. 저는 대신 주말에는 철저히 가족과 함께 보내고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짧지만 진하게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죠.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즐거워지지 않겠어요? ^^ 

앞으로 10년 후 내 모습은?
여전히 디자인을 하고 있을 것이고 디자인과 관련된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지요. 은퇴 후를 위해서 주말에 시간을 내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전시회도 단체전이지만 두 세번 했었고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색감 등이 디자인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것도 좋고요.

제가 그린 “추억 그리기 Ⅱ”라는 이 그림은 누군가가 흑백사진으로 촬영한 것을 약간 변조해서 그렸더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지요. 이 그림을 보면 아이들의 색감, 표정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르고 색상도 Green에서 Blue, 점점 Red로 넘어가면서 전체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합니다. 디자인이라는 것과 조직에서 일하는 것도 이 그림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진 전문위원이 그린 사진



일 분 일 초를 쪼개 사용하시는 바쁜 일정 중에도 더 블로그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열정 가득한 즐거운 대화를 나눠주신 ‘디자인 요리사’ 김진 전문위원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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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희연 차장 사진

정희연 차장(미도리)은 홍보팀에서 온라인 PR과 글로벌 사이트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끊임없이 자극하며 배움을 넓혀가고 있다. 온라인에서 미도리라는 닉네임으로 기업블로그, PR 2.0, Media 2.0에 대한 스터디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