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친근한 사이에서 박 주임이나 이 책임을 부를 때 “박쮬~”, “이책~”이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를 “차 슈퍼~”라고 부릅니다. 그는 바로 기능 중심의 전자제품 시장에서 고객 감성이라는 화두로 빅 히트를 친 초콜릿폰 개발의 주역인 차강희 위원님. 텐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만큼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아~~ 그 폰 디자이너?” 할 만큼 유명해진 분이시고 LG전자 최초의 임원급 전문 위원이시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에게는 아직도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분이십니다.

차강희 슈퍼 디자이너 사진

겸사겸사 오늘은 제 인생의 롤 모델이기도 한 차강희 슈퍼 디자이너(이하 차 슈퍼)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2003년, 제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갓 일 주 정도 지난 때의 일입니다.

제품 자체가 아닌 자리에 어울리는 디자인
그 때 차 슈퍼는 저의 첫 그룹장이셨습니다. 출근 첫날 그룹 배정을 받고(저는 DVD 그룹) 그룹장님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그곳 테이블에 DVD 플레이어들이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차 슈퍼께서 저의 인사를 받자 마자 하신 말씀이 “너는 어떤 게 제일 예뻐 보이냐?” 였습니다. 아주 솔직히 다 그저 그랬습니다.^^;;; 처음 디자이너로 입사하면 대부분 휴대용 기기들(휴대폰, MP3, PMP 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DVD 플레이어 같은 종류의 제품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거든요. 어쨌든 어영부영 대답을 하고 그 상황을 간신히 모면했습니다.

몇 시간 후 갑자기 차 슈퍼께서 테크노마트에 시장 조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게 아닙니까. 부랴부랴 따라 나서 테크노마트를 돌아보는데, 다시금 차 슈퍼가 구석에 있는 DVD 플레이어를 가리키며 물어보시더군요.

“저건 디자인이 어떤 것 같으냐?”
음. 디자인은 아주 디테일하게 기억 나진 않지만, 제품 전체에 나무 무늬 패턴이 뒤덮여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때 내 기준으론 정말 촌스러워 보였습니다. 솔직히 대답했죠.
“디자인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차 슈퍼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만약 저 디자인이 한옥으로 된 집에, 나무로 된 테이블 위에 올라가면 어떨 꺼 같으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차 슈퍼의 눈에도 외관이 썩 세련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제품 외관에만 집중하는 신입 디자이너를 일깨워주고 싶어서 그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어야 했습니다. 제품 디자이너는 제품만이 아닌 제품이 놓여질 자리에 대한 디자인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거든요. ^^

디자인 인생의 롤 모델, 차 슈퍼

제품 사진
초콜릿폰의 컨셉 이미지

이런 차 슈퍼와의 에피소드가 있고 난 이후, 당연히 차 슈퍼를 제 인생의 롤 모델로 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화두를 던지시곤 하시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스케치, 그림 잘 그려도 설득할 수 없으면 다 소용없다.”입니다. (주로 프리젠테이션 시에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 동안 차 슈퍼가 히트시킨 초콜릿폰이나 샤인폰, 뷰티폰 등이 모두 기존 소비자들의 선호를 뛰어넘는 새로운 발상에서 출발한 것들인데, 그것을 확신을 갖고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경영진들에 대한 충분한 설득 과정이 뒷받침 되었겠죠.

차 슈퍼를 알면 알수록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늘어나니, 괴로운 심정이 들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저를 비롯한 우리 디자이너들 모두가 차 슈퍼를 통해 ‘최고의 디자인’이란 화두에 조금씩 다가서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Writer

한성희 선임(Boss)은 디자인경영센터에서 휴대폰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신의 디자인이 외형만이 아닌 느낌과 감성을 가질 수 있는 디자인이 되길 원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동호회(자동차, 사진, 디자인 등)에서 활동하며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또한 토론하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