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불멸의 물음들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삶 속에서, 내가 죽음이라는 것과 맞닥뜨리게 된 것은 코흘리개 시절 그 애를 처음 본 날이었다.

 

담벼락을 따라 심어져 있는 과실나무와 꽃밭에서 원초적인 때깔을 자랑하는 꽃들이 만개할 때면 꿀벌들이 날아와 정신 혼미하게 잉잉거렸다. 향기로운 그곳에 모여들어 잉잉대는 꿀벌 때문에 귓속이 다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환청처럼 들려오는 벌떼들의 잉잉대는 소리에 어지러운 환각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러한 고향집엔 나무대문을 떼버려 항시 개방되어 있는 정문 말고도 몇 군데 더 뚫려 있었다. 선호 아제네 댁으로 나가는 입구와 교동할매 댁으로 내려가는 작은 입구였다.

 

교동할매 댁으로 내려가는 입구 쪽에는 뒷간만한 높이의 나뭇짐이 그득 쌓여 있었다. 교동할매가 삭정이 관솔과 잔가지를 쳐와 쌓아놓은 것들이었다.

 

여자와 북어와 개는 패면 팰수록 야들해진다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돌던 가부장제 산골마을이었다. 그로인해 마을 할매들은 몰래몰래 담배를 태워댔다. 그런 마을할매들과 달리, 교동할매는 긴 곰방대에 담뱃잎을 꾹꾹 쑤셔 박아 넣어 대놓고 태워대셨다. 그런 교동할매의 생신을 앞두고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난 아이가 있었다. 낯설면서도 왠지 모르게 고귀하게 느껴지는 뽀얀 피부의 도회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꼬질꼬질하게 탄 피부를 한 마을여자애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보였다. 그런 그 애를 처음 보는 순간 나는 묘한 설렘에 떨어야만 했다. 이성에 대한, 강렬한, 첫 떨림이었다.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그 애를 먼발치에서 목도했을 때 나의 눈은 샘솟는 기쁨으로 환해져 있었다. 또한 꽃향기 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그 애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을 땐 나의 마음에서는 청량감이 불어왔다. 꿀벌들이 실체조차 짚이지 않는 날갯짓으로 혼미스럽게 잉잉되던 꽃들 속에서 놀고 있는 그 애를 은밀하게 지켜보면서, 나는 약동하는 환희에 떨면서도 숨을 죽여야만 했다.

 

앞뜰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던 아이.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그 아이는 얼마 안 있어 교동할매 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갈망으로 그 애의 뒷모습을 비밀스레 지켜보던 나는 커다란 아쉬움에 사로잡혀야만 했다.

 

외출하셨다 돌아오신 조모께서 그 애 이야기를 해주셨다. 교동할매네 댁에 가고 싶은 나는 애꿎은 조모께 괜스레 투정만 부려댔다. 이 대 독자로서 조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란 터라 버르장머리가 없었던 것이다.

 

애타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신 조모께서는 다시 외출준비를 하셨다. 민화투의 격정장이면서 마을할매들의 진지였던 교동할매 댁에 간다는 것을 낌새로 알아차렸다. 그런 나는 조모의 치마저고리를 휘저어 잡고 따라나섰다.

 

커다란 황금비녀와 은비녀로 쪽을 찐 마을할매들은 십 원짜리 동전들이 들어있는 알록달록한 비단 복주머니를 한편에 내놓은 채 화투를 치고 계셨다. 그러나 교동할매는 십 원짜리 동전이 가득 담긴 밥그릇을 옆에 두고 치셨다. 그 막강한 탄환 때문인지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으셨다. 기다란 곰방대에 담뱃잎을 자주 쑤셔 넣어 느긋하게 태워대셨다.

 

그 애가 방으로 들어왔다. 막상 그 애 앞에 있으니 너무나 부끄러워 아무런 말도 못 붙인 채 몸만 비비꼬아댔다. 가슴앓이를 하며 조모 화투 치는 모습만 구경했다. 떡 하러 방앗간 가는 채비를 하시느라 교동할매는 아쉬운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애는 그 날 떡 찧으러 방앗간 가는 경운기를 타고 냇가에 놀러갔다가 변을 당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한참이나 떠내려 가, 철길 교각에 걸려 있는 그 애를 구이장님이 겨우 찾아온 것이었다.

 

놀다보면, 동구 밖의 들판 저만치서 구슬픈 상엿소리를 내며 장지로 향하는 꽃상여와 그 뒤를 따르는 기다란 행렬들을 어쩌다 목도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조무래기들은 히득거리며 그 장면을 흉내 내어 따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구이장님이 오토바이에 싣고 온 그 애를 교동할매도 없는 빈집마루에다 내려놓았을 때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물기에 흠뻑 젖어있는 옷을 입은 채로 곤한 잠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아이의 주검을 보고도 죽음의 실체가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