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시작했던 여러번의 사업의 실패로 인한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도저히 헤어날수 없는절망감과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오직 죽음만을 생각 하던 나에게 찾아온 친구의 권유로조그마한 영업직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미없는 회사생활을 하며 점차 적응을 할즈음에  새로 여자 신입사원이 들어왔습니다

팀장의 주도로 새로 들어온 여자 신입사원을 환영하기 위한 환영회 술자리가 있었고

왠지 그여자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1살이 어리고 살던곳은 서울이란 것과 동생들과 함께 인천으로 내려와서 같이 산다는 사실과교제하는 남자도 없다는 것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환영회 이후로

우리둘은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고 서로를 좀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귄지 4달정도가 되어갈즘  그녀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왠지 자꾸 배가 아퍼서 병원에 진찰을 갔는데 진단결과 임신2개월에 접어든다는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 였죠 순간 현기증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고아직 서로 양가부모님께 인사도 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더욱 중요한것은 그런 사실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않았기때문에  순간 그녀에 대해 상대적으로 허탈감이 생겼습니다.

일단은 시간을 두고 생각 하자는 애기를한후 그순간과 그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사실을 알게된 그날 이후로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고 잠시 그사실을 잊고 살고 싶었습니다왠지 커다란 족쇄가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나의 온몸을 채워놓은것같은 느낌이었죠..

내가 모르게 아기를 지웠으면 하는 생각도 수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마 낙태를 시키라는 말은 할수가 없었습니다나의 실수로 인해 한생명이 무의미하게 세상의 환한빛을 볼수없다는게 얼마나 큰죄악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결정도 하지못한 상태에서 그녀의 배는 자꾸만 커져갔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도 왠지 눈치를 챈것같았고얼마후 그예감은 적중했고 그런주변의 시선이 너무나 부담이 컸기 때문에

임신5개월이 되어갈즘 더이상은 숨길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사무실을 그만두게 하였고

조금의 돈을 빌려  인천변두리에 있는 조그마한 월세방을 얻은후 저역시 사무실을 그만두고

신혼살림을 하게 되었죠

나로 인해 그녀는 가족과도 연락을 끊게 되었고 나역시 마찬가지로 연락을 끊고 살게 되었습니다..

막상 일을그만두고 난후 먹고살길이 막막해져만 갔습니다예전의 사업실패로 인한 빛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려서 식구를 벌어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직장을 구하기가너무나 힘이들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자리를 알아보며 다녔지만 쉽게 구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내역시 임신을 한몸인데도 불구하고 직장을 구하러 다녔고 다행히

저보다 먼저 직장을 구해서 무거운몸을  이끌고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

배가불러서 맞는옷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지지퍼를 반쯤내린채 운동화 끈으로 허리띠를 대신하고차비라도 아껴보겠다면서 출퇴근을 할때마다 무거운 배를 끌어안고 걸어다니는그모습을 두눈으로 봐라만 봐야하는 저의 무능력함에 너무나 가슴이 아펐습니다.

남자는 밖에 나가서 돈없으면 바보된다고 회사에서 나오는 점심값을 모아서  건네주는그런아내의 마음에 제자신이 자꾸만 미워지더군요

하루하루 일자리를 찾아 헤메던중  아는사람의 소개로 면접을 보러가던 휴일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애기가 나올거 같다는 급한 내용이었습니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택시를 타고 바로 근처가까운 산부인과로 도착을 하자마자아내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 제왕절개 수술을 하였고…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아내를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이렇게 기쁘고 행복한날 어느 누구에게도 알릴수가 없다는 외로움과 설움이 복받쳐서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고..창밖에서 내려다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데 난 그행복을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그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것입니다

정말로 태어난걸까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되는건가 하며 귀를 기울이던중 수술실의 문이 열리면서 아내와 함께 하얀천에 둘러싸인 아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아직 마취때문인지 아내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는데 눈가옆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입니다.얼마나 두렵고 아펐을까 못난나를 만나서 축복받지도 못하고 혼자 쓸쓸히 그슬픔을 받아들여야 한다는것이나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습니다..

병원에서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해준채 일주일후 아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퇴원을 했습니다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왜이리 무거운지 아내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습니다그렇게 또다시 사랑스러운 아기와 새로운 삶이 시작이 되었고 다시한번 내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에무엇이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일이나 가리지 않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지 다했습니다

아내에게는  새벽운동을 하러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집집마다 우유배달도 하고

시간이 지나 우유배달이 끝나면 다시 집에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아침도 거른채 건강보조 식품영업을 하러 시내를 하루종일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인지 가는곳마다 문전받대를 당하는게 다반사였고어쩌다 좋은분을 만나서 계약사인을 받을라 싶으면 끝에가서 구매를 하지않는것입니다..

그렇게 5달동안 계약을 성사시켜 판매한 건수는 5건도 되지를 않았기에집안살림은 엉망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에는 그일을 그만두게 되었죠다른직장을 구하러 다녔지만 신용불량자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입장이라 그마저도 쉽게 구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런생활이 하루하루 반복되면서 집에 있는날이 더많아 지게 되었고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생활비마저 떨어져 가면서 지하방월세도 수개월이나 밀리자 월세를 내지 못하면 나가라는 주인의 전화와 노란딱지가 커다랗게 붙어있는 수도세와 전기세도 내지를 못하고 각종청구서만 한가득 쌓여갔습니다

하지만 더욱 가슴아픈건 아기에게 먹일 분유마저 떨어졌는데 그것마저 살돈이 없는것입니다아기는 배가고프다고 우는데 분유는없고그나마 동네에 있는 슈퍼에 밀려있는 외상값 때문에 기저귀 마저 갈아입히지를 못했습니다..

부모잘못만나서 굶고 있는 아기의 모습과 울음에 너무 마음이 아펐고

아내는 이미 말라버린 젖을 억지로 쥐어짜며아무말도 하지않은채 아기를 품에 안고 울기만 하더군요 몸도 풀지 못한 아내에게 따뜻한 밥을해주진 못한채  이틀이 멀다하고 라면하나로 하루를 보내야할때가 더많습니다..

하루는 그나마  남아있던 라면이 떨어져서 혹시나 하는마음에 장롱속에 있던

저금통장을 찾아 은행에 가서  남은잔액을 확인해보니2개의 통장을 통털어 2500원 정도의 돈이 있는것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옆에 앉아있던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돈을 찾더군요..

그냥 아무생각없이 보았는데 10000원 짜리 몆다발이 들려져 있더군요 순간 나쁜 생각이 들더군요

저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면 우리아기분유와 기저귀를 사고고생하는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과 옷을 사줄수 있을거란 생각에 돈을 가지고 가는 아주머니의 뒤를 무심코 따라갔습니다

머릿속엔  ” 저돈만 있으면 난 어찌되든 상관없어 ”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순간만을 기다리며

뒤를 쫒아가며 기회만 노리던중 내앞으로 우리아기 또래의 아기를 안고가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아기의 웃는얼굴과 사랑스럽게 안고가는 애기엄마의 모습이 너무행복해 보였고순간 집에 있는 아내와 아기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하려했는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은행으로 돌아가서마지막 남은 돈을 찾아서 라면 몆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데 왜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너무나 서글프더군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다행이도 동네분의 소개로 근처 공사현장에 잡부로 일을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얻은 일자리에 아내는 기분이 좋았는지 일을 마치고 오면 뽀얗게 먼지가 쌓인 저의 얼굴에 고생했다면서사랑스런 입맞춤도 해주곤 했습니다..

일은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더이상 아내와 아기에게 배고픔을 주지않을수 있어서

아픈몸이었지만 일을 할때에는 힘이든지도 아픈지도 몰랐습니다아무리 힘이 들어도 집에 있는 아기와 아내를 생각하면 힘이 생겼기 때문이죠..

하루는 같이 일하는 인부가 지방에 큰공사판이 있는데 거기가면 임금을 더많이 준다고 하더군요몆번의 생각과 고민끝에 아내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며칠후 아내와 아기만 남겨둔채저는 동료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한달정도만 마무리 공사를 하면 되었기에 아내와 저는 서로 전화통화만 한채 떨어져있게 되었습니다..

내려가 있는 한달동안 이른새벽부터 일어나서 공사장에서 일을 하며 시간이 흘렀고약속한 한달이 되어서 집에 가는날이 되었습니다얼마되지 않지만 그래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줄수있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임금지불 시간이 되었는데도 임금이 나오지를 않더군요

조금있으면 주겠지하며 기다렸지만 관계자의 얼굴조차 보이지가 않는것입니다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현장사무실로 가서 물어봤더니 이미 임금을 지불했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받은 적이 없는데 무슨소리냐고 따졌지만  지불이 끝났으니 더이상 귀찮게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방공사를 가자고 한그사람이 우리에게 지불되는임금을 받아서 도망간것입니다..너무나 기가 막히고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어떻게 번돈인데 그돈을 한푼도 만져볼수가 없다는게 믿겨지지를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그사람을 찾으러 다녔지만 찾을수가 없었습니다전화기도 이미 정지가 된상태였고 아무리 찾아도 도무지 찾을길이 없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건 집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기의 모습들만 스쳐갈뿐 아무것도 보이지않더군요 ..마음을 추스리고 버스를타고 집으로 가는데 아내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걱정만 앞섰지만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해서 들어가는데 현관문이 활짝 열려져 있는것입니다

날씨도 추운데 왜 문이 열려있지 하고 문을 들여다 보는데 문짝이 없는 것입니다

순간 무슨일이 생긴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뛰어들어가 보니 피마저 얼려버릴듯한 찬바람이 부는 방너머 아직 떼어가지 않은 화장실 문틈너머  그안에서 촛불을 켜논채 잠이들어있는 아내와 아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인기척에 잠이 깬 아내에게 이게 지금 무슨일이냐

“문은 어떻게 된거고 방안가득 촛불은 왜 켜놓았는지 ” 물어보았습니다 ..

묻는말에 대답은 하지않고 저를  보자마자  품에 안기더니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것입니다

저는 그런 아내를 진정시키고 이상황에 대한 이유를 다시물어보니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너무어이가 없고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

제가 지방으로 가있는동안  집주인 아들이 밀린월세를 받으러 아내와 아이밖에 없는 집으로 들어와

당장 밀린월세 안내놓으면 안좋게 될지 알라면서 반협박조로 몆번씩이나 다녀갔다고 하더군요..제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말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몆일전에 다짜고짜 와서는현관문을 떼갔다고 하는것입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추운 겨울날 뻔히 갓난아기가 있는걸 알면서도 밀린월세를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짝을 떼어가는 이세상이 너무나 싫었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하고 집주인과 만나서 같이 죽고싶은 마음밖에는 안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방안가득 켜져있는 촛불에 대해서 물어보니 또다시 우는것입니다밀린 전기세 때문에 전기가 끊겼고  어쩔수 없이 저녁때에는 초를 켜논채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는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펑펑우는 아내와 희미한 불빛때문에 잘보이지 않는 아기의 얼굴을 보니 눈물만 흘렀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하고 슬퍼서 더이상 이세상을 견딜힘이 사라진 절망감에 서글피  울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 이제 더이상은 못버틸것 같아 우리 세식구 차라리 지금 같이 죽는게 어떨까 “

하고 물었더니 서러운 눈빛으로 아내가 그러더군요

우리아기가  나에게 ” 엄마 ” 라고 부르는소리 한번만 듣고 죽으면 안되요 “

” 자기도 아빠 소리 한번은 들어야 될거아냐 ” 하면서 서럽게  그렇게 서럽게 우는것입니다

그런아내의 불쌍한 모습이 너무나 가슴아프고 서러워서 저희 둘은 그렇게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

왜그렇게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안멈춰 지는지 그렇게 울다울다 잠이든아내의 얼굴을 쳐다보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남들처럼 곱디고운 면사포도 씌워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키는데도 아무런 말도없이 늘 한결 같은 마음과 모습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절망도 늘 같은 모습으로 나의 곁에서 가장 커다란 힘으로 가장 힘찬 응원으로 함께 해준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