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때 허율은.

 

10명의 아이들과 한달에 한번 우리반의  커피 및 간식을 위한 장을 보러 갔고,

배가 아프면 교실 뒤에서 체육복을 깔고 누워있었고,

2학년때 무리한 다이어트로 바짝 줄여놓은 교복을 소화할 수 없어서

체육복이 그 자리를 대신했었다.

수업시간에는 최대한 졸지 않으려고 잠이 오는 볼을 계쏙 꼬집어 대기도 하고 가끔은 선생님께서 미안해서 깨우지 못하도록 일부러 더욱 세게 볼을 꼬집는 척을 하기도 했다.

매달 모의고사가 있는 날은 우리들의 공식 지정 외식날!

몰래 야자를 띵기고 나가서는 삼겹살이 1차요! 노래방이 2차였다.

새롬이와 새로지은 체육관 건물 뒤에서 매일 수다를 떨었고,

선미와 다투고 어색해진 그때 어떤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도 몰라서 망설였다.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면 고3 신분을 망각하고 be the reds!를 외치며 4강의 신화를 충대에서 대학생들과 몸으로 함께 느꼈다ㅋ

남자친구와 한달에 서너번은 헤어졌고-

결국 정말 끝이 난 그날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처럼 아파했다.

매달 오르는 성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고,

모의고사에 쓰는 1지망 2지망 3지망의 등수를 보며 흡족해했으며-

가끔은 “자격미달”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마주하기도 했다.

전교 1등한테 찾아가서 맨날 긴장하라고 경고했었고-

늘 그 경고는 경고에서 그쳤었다. 실현이 되었으면 주미가 더욱 긴장했을텐데.ㅋ

그 시절 세상에 처음 나온 “월드콘 헤이즐넛”에 흠뻑 빠져있었고

학교 앞 새로생긴 “교자만두”의 만두는 늘 우리의 내기 대상이었다.

파란색 과학탐구 1000제 문제집을 끝끝내 고3내내 풀지 못했고-

어느날인가는 정아랑 훌쩍 부산으로 떠났다가

누구였지? 울반 여자 아이와 그의 남자친구를 부산에서 만나기도 했다

학교에서 11시에 야자를 마치고

봉고차로 들어서는 내 표정을 보면 오늘의 컨디션을 봉고 아이들이 체크 할 수 있었다.

한때는 봉고차 안에서 이과와 문과의 전쟁이 일기도 했었던 것 같다.

문과반에 날 닮은 전선이란 아이와 나를 여러 아이들이 매우 헷갈려 했고, 상미 남자친구가 싸오는 도시락을 나눠 먹기도 했었다.

가끔 공부가 안될때는- 충대로 가서 음주를 즐겼고-

보통때는 열공버닝 고시원에서 2시까지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섰다.

고시원에서 넋을 놓고 자고 있으면-

주인 아저씨께서 손수 “숙박비”를 받아야 겠다며 날 다그치신 적도 있었다. -ㅁ-;

내가 너무나 동경하고 존경했던 울 반 담임 선생님은 풍문에 의하면 교감 선생님과의 불화로 인해 5월에 갑자기 울반 담임을 그만 두셨고-

얼떨결에 새로 배정된 무심한 울 담임 때문에 그리고 그에비해 엄청나게 친절하신 옆반의 나용환 선생님 때문에 우리 반은 졸지에 엄마 없는 자식들 처럼 골골 댄 적도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일주일에 세번 갔던 한맥 수학 학원에서는

폭식쟁이 원장선생님의 거대한 야식을 기다리는 맛이 꽤 짭짤했다.

아침에 날 깨우는 엄마한테 “87일, 87일”이라며 수능이 몇일 남았는지 잠꼬대를 해 대는통에 엄마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수능날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는 아빠 차에서 나오는 눈물을 참는게 언어 영역보다 훨씬 어려웠고,

채점을 하고나서 먹은 닭찜의 닭뼈는 목에 걸려 그렇잖아도 서러운 수능생의 마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었다.

다음날은 수능 점수 따윈 잊고 알바를 찾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2002년 나의 고3도 끝이 나고 있었다.

 

 

 

하하-

다른 사람들은 재미 없을

나의 고3 이야기-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 어느때 보다 행복한날라가는 하트

나의 고3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