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요리를 하고있는 모습

 

안녕하세요. 봄을 맞이해 이벤트 사연에 참여하게 되네요 ^^ 

머릿속에 행복한 순간이 언젠인가 생각하는데..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먼저 사연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김천 평화동 아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던 엄마는 20살이 되어 처음 버스를 탈 때도 바닥이 더러워질까 봐 신발을 벗어들고 탔을 정도로 순박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지으며 다른 형제들을 모두 외지로 학교 보냈지만, 정작 엄마는 중학교도 혼자의 힘으로 겨우 졸업한 채 시골에 남아 할아버지 말씀이 법인 양 묵묵히 살아 오셨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혼기까지 놓치고 살다가. 뒤늦게 선을 봐서 옆 동네에 살던 아빠를 만났습니다. 엄마는 살림도 어려웠지만 고집불통 시할아버지와 잔병치레 많은 시할머니 때문에 고생 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가졌을 때도 시댁 어른 구박에 못 이겨 새벽에 몰래 마을 골짜기로 들어가 죽으려고 언덕에서 구른 적도 있대요. 그래도 저는 용케 태어날 운명이었는지 엄마가 하우스에서 일하는 도중 세상에 나왔어요. 아들이기를 바랐던 할아버지는 실망한 나머지 금방 애 낳고 누워 있는 엄마한테 밥 해오라며 고함을 치실 정도로 매정하셨습니다. 동생 둘이 더 태어날 때까지 아빠는 돈을 벌면 모두 할아버지께 드렸기 때문에 우리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조차 할아버지 눈치를 보았습니다. 엄마는 고부 갈등으로 점점 야워어갔고 매일 밤을 울며 보냈답니다. 결국 아빠는 어느 날 새벽, 가족들을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왔습니다. 달랑 차비밖에 없던 아빠는 고맙게도 친구가 자신의 오토바이와 결혼반지 등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 준 덕분에 거처를 마련하고 일자리도 구할 수 있었답니다..

엄마는 20년 넘게 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셨습니다. 아이들 보는 낙에 힘든 줄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작년에 그만 학교에서 눈을 크게 다치셨어요. 예초기로 풀 베고 있는 동료한테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하라는 말을 건네려는 순간 나무꼬챙이가 튕겨 두 눈을 멀게 한 것이였죠. 엄마가 다치신 날, 난생 처음 응급실에 갔습니다. 눈에 붕대를 친친 감고 계신 엄마를 보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죠. 의사 선생님은 왼쪽 눈은 일부러 눈을 때려도 그렇게 되기 힘들 정도로 신경을 다쳐서 회복하기 어렵고, 오른쪽 역시 장담은 못하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말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평생 흘린 눈물을 다 흘린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만 하신 엄마인데 하늘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두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오른쪽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 왔지요. 한동안 엄마는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셨고 하루 종일 한숨만 쉬며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셨는지 차차 좋아지셨습니다.

그리고 통원 치료를 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데 엄마가 아빠랑 내가 얼핏 보인다고 하시는 거에요. 사물도 조금 구별하시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가 다쳤을 때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동안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아픔 속에도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도 이제 지금 신랑이랑 결혼을 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등산을 하기 위해 놀러 갔습니다. 아버지와 마이산 등산을 할려고 준비하는 동안 . 칠십 세 잔주름이 가득한 아버지 얼굴에 햇살이 아른거렸어요.모처럼 신랑과 부모님과 산으로 바람 쐬러 가자고 했는데 엄마는 한사코 “내가 가면 다들 신경 쓰느라 놀지도 못한다! 나는 집에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만 모시고 나왔어요. 시력이 안좋으셔서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이기 꺼려서 외출이라면 질색하시는데, 아버지는 집에 혼자 두고 온 엄마가 못내 마음에 걸리셨나 봅니다.

“나들이 가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오죽하겠나 ! 안쓰러워 뭐라 하면 네 엄마는 자꾸 잔소리 한다고 싫어하니 원.. 엊그제는 글쎄. 부엌 바닥에 흘린 물을 내가 밟았지 뭐냐. 물을 왜 질질 흘리냐고 했더니 물이 어디 흘렸냐고 오히려 화를 내더라 네 엄마는 버선을 신으니까 잘 모르지만 난 양말을 신었으니 금방 알지! 엄마도 눈이 안 보여서 답답하겠지만 나도 걱정스런 마음에 잔소리를 하게 되니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하시는 아버지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를 아끼는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두 분은 자식들 짐이 되지 않겠다고 아직까지 손수 살림하시며 올해도 햇콩으로 서너 말이 넘도록 메주를 쑤십니다. ‘또 맛있는 된장 먹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짠하네요. 눈이 어두워도 엄마의 된장 맛은 동네 사람들이 다 인정할 정도니. 손맛이란 게 정말 따로 있나보네요.

요리하고 있는 모습

된장 담그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이 다음에 엄마 안 계서도 그 맛을 느끼고 싶다 하니 엄마는 “너도 정성껏 담그면 분명히 엄마 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쉽지 않아요.

이제 허리도 아프니 그만하시라 해도 살아 있을 동안 당신 할 일이라며 멈추지를 않네요.

오늘 사연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요리하고 대화를 하면서 정말..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