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년전. 서울에 거주하는 나는 대학을 대전에서 다니게 되어 어쩔수 없이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유학이라고 같은 유학생활을 하게 된 친구들과 사귀게 되어 같이 서울에서 부모님들이 부쳐준 용돈을 열흘도 안 되어 다 탕진하게 되었지요.

12월 싸늘한 겨울 방학인데 다들 서울로 상경 안하고 더 놀자고 대전 자취방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결국 서울 올라가는 차비도 제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같이 돈을 걷어 고기를 구워먹고 그 후로 이틀동안 고추장에 밥 비벼먹고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다 결국 쌀도 떨어져서 정말 먹을게 없던 저와 친구들은 결국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심은 바로 일명 “노가다”에 일용직으로 근무를 하는건데 추운 겨울에 공사장 일은 없을게 뻔했고 수소문하다시피해서 결국 일자리를 얻은게 “양계장 청소”였습니다.

정말 말이 “양계장 청소”지 정말 할짓이 못됩니다. 닭들의 배설물들을 치우는데 닭들이 모이먹고 설사만 하는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일도 힘들었죠.

그렇게 하루 종일 하고 나서 받은 돈이 그 당시에 3만5천원이었습니다. 원래 4만원 주려고 하다가 일을 하도 못해서 5천원을 빼더라구요.  아무튼 일을 종료하고 친구들과 기쁜 마음에

버스에 올랐는데 정말 드라마처럼 사람들이 죄다 앞자리로 몰려갔습니다. 우리는 냄새가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맡기 힘든 닭 냄새였을겁니다.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 탕수육, 짜장면을 주문하고 먹자마자 뻗고 월요일에 일어났는데 그제서야 서로 돈의 중요함을 깨달았는지 택시타고 시내로 나가서 서로 돈을 입금하겠다며 은행을 갔습니다. 그때 간 은행이 국민은행인데 각자 25,000원씩 집어넣고 처음으로 체크카드도 만들고 정말 그때만큼은 마음만은 부자였지요.

그렇게 시내를 배회하다가  결국 음주문화에 다시 빠져서 돈을 거의 다 탕진하고

남은돈 9천원을 가지고 새벽이라 택시를 잡아타야 하는데 눈도 내리고 해서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카드를 카드기계에 긁었는데 돈이 안나오는겁니다. 하도 이상해서 잔금을 보니 9천원인데 누르는 버튼은 천원단위가 없더라구요. 정말 다들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천원 때문에 택시도 못잡고 버스는 끊겼고 맘급한 친구는 택시를 이미 잡았다가 결국 그 택시를 보내고 우린 그냥 추워도 집까지 눈을 맞으며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리 위를 걷고 있는데 택시와 화물차가 들이받아있는게 눈에 띄어 친구들과 가까이 가보니

저희가 처음에 잡으려 했던 택시가 아니겠습니까! 그 당시에 눈이 하도 많이 내려 차들이 거의 20~30Km 속도로 운행을 했는데 다리위는 도로가 잘 얼어서 차가 두바퀴 구르고 지나가는 화물차와 받았다고 하더군요. 정말 생각만해도 아찔했습니다.

친구들은 저까지 해서 4명이었는데 한쪽 창문이 깨져 있는거 보면 정말 우리 중에 누군가는 크게 다쳤겠구나라는 아찔한 생각과 함께한 그 차가운 겨울날의 기억이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